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  
 

성(誠 - 정성)
정성(精誠)
    - 정성(精誠)은 속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타고난 성품(性稟)을 지키는 바이니 여섯 가지 근본과 마흔 일곱 가지 쓰임이 있다.
경신(敬)
  - 경(敬)은 지극한 마음을 다하는 것이며 신(A)은 한얼님이다. 해 달 별과 바람 비 천둥 번개는 모습이 있는 한울이고 보지 못하는
물건이 없으며 듣지 못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모습이 없는 한울이다.
모습이 없는 한울을 한울의 한울이라 하니 한울의 한울이 곧 한얼님이다. 사람이 한울을 공경하지 않으면 한울이 사람에게 응(應)하지 않으니 이것은 풀과 나무에게 비 이슬 서리 눈이 내리지 않는 것과 같다.
존봉(尊奉)
  - 존( )은 숭배함이고, 봉(奉)은 정성스럽게 간직함이다. 사람이 한얼님을 높이 받들면 한얼님 또한 사람에게 정기를 내려 주시니 마치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언 몸에 옷을 입혀 주는 것과 같다 만약 정성이 없이 한얼님을 높이면, 또한 귀 멀고 또한 눈먼 것 같아서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하고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
숭덕(崇德)
  - 숭(崇)은 높이는 것이며, 덕(德)은 한울의 덕이다 한울의 덕은 가문 땅에 내리는 단비나 그늘진 골짜기에 드는 봄볕과 같다
잠시라도 한울의 덕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만물이 만물답지 못하니 이런 까닭으로 철인(哲人)은 부지런히 한울의 덕을 칭송한다.
도화(道化)
  - 도(導)는 가리키어 이끄는 것이고, 화(化)는 한울 장인의 조화이다 사람이 한울 장인의 조화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 한울과 사람의 이치에 어둡게 되어서 나의 타고난 성품을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한다. 먼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니 철인은 마땅히 깨달음을 열어 뒷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창도(彰道)
  - 창(彰)은 밝힘이며. 도(道)는 한얼님의 바른 길이다. 사람이 바른 길로써 행하면 요괴(妖怪)가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악한 마귀가 그 간사함을 부리지 못한다. 바른길은 중도(中道)이니 그 법도를 지켜 나가면 한울의 도가 밝게 드러난다.
극례(克禮)
  - 극(克)은 지극하다는 것이고 예(禮)는 한얼님을 공경하는 예이다. 예가 없으면 공손하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하면 정성이 없으니 만약 예를 다하고 공경을 다하면 한얼님이 위에서 강림하신다.
숙정(肅靜)
  - 숙(肅)은 기운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며, 정(靜)은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다. 기운을 바르게 세우면 물욕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면 한울 이치가 스스로 밝아져서 마치 해 아래 거울을 걸어 놓은 것과 같이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게 된다. 기운을 바르게 세우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공경하면 한울에 계신 영을 볼 수 있다.
정실(淨室)
  - 정실은 한얼님을 높이어 받드는 곳이다. 높고 깨끗한 데를 가려서 비린내와 더러운 것을 금하고 시끄럽게 떠들지 않으며 번거로운 형식을 피해야 한다. 그릇과 도구는 보배로운 것이 아니라 질이 깨끗한 것이 중요하다.
택재(擇齋-고요히 삼가고 마음을 경계함)
  - 택은 지극한 정성의 표현이며, 재는 고요하게 삼간다는 뜻이다. 비록 빌 것이 있더라도 여섯 가지 감정에 치우쳐 구한다면 이는 한얼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반드시 날을 가리고 마음을 경계하여 한결같은 정성줄이 가슴에 가득 들어차게 한 뒤에 행한다면 한얼님이 굽어보신다.
회향(懷香)
  - 회향 시(懷香 時)에 이르기를 " 한 향로를 받들어 올리고자 하면 공손히 천리 길 같은 마음을 품어라 향 연기는 날아서 흩어지지 않으니 향하는 곳을 정하면 지극한 정성이 깊어지느니라."
정심(正心)
  - 정심은 한울의 마음으로 바르게 하는 것이다. 마음에는 칠규(七竅-일곱 구멍)가 있어 육감이 희롱하게 되면 한울의 이치를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다. 하나의 영대(靈臺)가 높이 서는 것은 태양이 밝아지면 구름과 안개가 사라지고 바다가 크고 넓으면 티끌이 없어짐과 같다.
의식(意植)
  - 意는 마음에서 명령을 받은 것이며, 植은 뿌리를 심어 옮기지 않음이다. 뜻이 한울 마음에서 명령을 받지 않고 사람의 욕심을 따라 망령되게 움직이면 온 몸이 명령을 어겨 끝내 공을 거두지 못하니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마침내 뿌리까지 흔들리게 된다. 한울 마음으로 바르게 하려면 먼저 뜻의 밭을 갈아 고르게 해야만 운행 할 수 있다.
입신(立身)
  - 立은 곧은 것이며 身은 몸이다. 마음에 부끄러운 것이 없은 후에야 몸을 곧게 하여 세상에 설 수 있다.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감추고 숨기는 사이에 괴로움과 번민이 번갈아 이르러 정이 흩어지고 기가 쇠하게 된다. 그러므로 철인은 순수하여 윤택해지고 중인(衆人)은 비굴하여 굽신거린다.
불혹(不惑)
  - 불혹은 만물에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밝아져서 사물을 밝게 비추지 자연히 그 추하고 아름답고 정밀하고 엉성함이 드러나 나의 분별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밝음에 의해 만물을 알게 되니 어찌 미혹되겠는가 ? 마음이 밝지 않으면 발을 겹겹이 친 것과 같아서 발 밖에서 뛰고 나는 것이 짐승인지 새인지 알지 못하여 마침내 미혹이 생기게 된다.
일엄(溢嚴)
  - 일(溢)은 물이 차서 넘침이며, 엄(嚴)은 크고 바른 기색이다. 한울이 가을 뜻을 품으면 엄숙한 기운이 세상에 넘치고 사람이 바른 마음을 품으면 엄한 기운이 동작할 때 한결 같아서 위엄은 신룡과 같고 모습은 높은 산과 같다.
허령(虛靈-마음을 비워 신령스럽게 함)
  - 허(虛)는 물건이 없음이고, 영(靈)은 마음이 신령함이다. 허령은 마음에 가리운 것이 없어서 서색이 영롱한 것이니 허한 가운데 이치와 기운이 생겨 크게는 천계를 돌고 작게는 티끌에 들어가 그 이치와 기운이 또한 허하고 또한 신령하다.
치지(致知)
  - 치지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깨닫는 것이다. 마음을 바르게 함을 끊임없이 하면 마음의 신은 앎을 맡고 마음의 영은 깨달음을 맡아서 소리가 들어오면 신이 통하고 물건이 오면 영이 깨달아 이미 지나간 것과 장차 올 것을 그 당시와 같이 밝게 알게 된다.
폐물(閉物)
  - 폐(閉)는 열지 않음이며, 물(物)은 사물이다. 마음은 일을 저장해 둔 창고이며 몸은 일을 행하는 기틀이다. 감추어서 펴지 않으면 어찌 이룰 수 있겠는가 ? 열고 폄에 때와 장소가 있으니 때에 맞지 않게 열고 장소에 맞지 않게 펴면 한울의 이치가 어두워지고 사람의 도리가 뒤집어진다. 그러므로 철인은 사물을 저장해 두면서 신중히 열고 편다.
척정(斥情)
  - 척(斥)은 물리침이며, 정(情)은 정욕이다. 기쁨과 노여움이 있으면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며 좋아함과 미워함이 있으면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고 안일함과 즐거움을 구하면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며 가난함과 천함을 싫어하면 바른 마음을 얻지 못하니,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먼저 정욕을 물리쳐야 한다.
묵안(默安)
  - 묵(默)은 오래 잠겨 있는 것이며, 안(安)은 맑고 담담한 것이다. 오래 잠겨 있음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경계하고 맑고 담담함으로 마음이 번거롭고 바쁜 것을 경계하면 흙탕물이 점점 맑아지고 거듭 흐려지는 것이 이내 안정된다. 이것이 마음을 맑게 하는 근원이니 맑은 마음이란 바른 마음의 기초가 된다.
자임(自任)
  - 자임은 다른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정성을 오로지 하여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되는 것이니 봄과 가을에 차례를 따라 바뀌고 해와 달이 서로 번갈아 드는 것과 같다.
자기(自記)
  - 자기는 기억하고자 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에서 구하는 것이요, 저절로 기억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있는 것이다. 도를 닦는 선비는 그 정성을 정성스럽게 하는 이치에 두어 몸을 위하여 나물 죽만 먹어도 머리에는 정기가 충만하므로 비록 만 가지 생각이 서로 번갈아 나타나지만 한결같은 마음은 정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첩응(貼膺)
  - 첩응은 가슴에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저절로 우러나오는 정성을 신이 거느리며 영이 감싸고 몸이 실어서 가슴에 굳게 간직하면 몸은 차가워도 가슴은 뜨겁게 된다.
재목(在木)
  - 재목은 정성이 있는 곳을 생각하지 않아도 정성이 항상 눈에 있음이다. 눈으로 사물을 보는 데에 보이지 않는 사물이 없으나 다만 정성스러운 뜻이 눈에 있으면 가까운 사물은 이름을 알지 못하고 먼 사물은 그림과 같이 보인다.
뇌허(雷虛-우뢰 같은 큰소리도 들리지 않음)
  - 뇌허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귀를 얽어매어 정성이 발(發)할 때에 우뢰 같은 큰 소리가 나도 스스로 공허하므로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신취(神聚)
  - 신(神)은 정신이며, 취(聚)는 합하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경락과 부위에 신이 각각 지키어 간의 역할에 폐가 관여하지 않고 위의 역할에 신(腎)이 관여하지 않는다. 단 정성을 드릴 때에는 모든 신이 합하여야 하니 하나라도 없으면 정성을 이루지 못한다.
불식(不息)
  - 불식은 지극한 정성이 쉬지 않는 것이다. 쉬지 않음과 숨이 없음은 각각 다름이 있으니 그 도의 힘이 떨치고 웅크리는 것과 사람의 욕심이 줄어들고 늘어남에 있어서 티끌 만한 간격이라도 서로 멀어지면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와 같다.
면강(勉强)
  - 면강은 스스로 강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스스로 강하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도모하여 갈림길이나 모퉁이에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없고 마침내는 힘들어도 이를 얻는 것이다. 강하기를 힘쓰면 정성의 근본이 깊고 굳어져 강함을 다스리지 않아도 강하며 어찌함이 없어도 이룰 수 있다.
원전(圓轉)
  - 원전은 정성이 쉬지 않는 것이니 마치 둥근 물건이 평평한 땅에서 저절로 구르는 것과 같다 그치려 해도 되지 않고 늦추려 해도 되지 않고 빠르게 하려 해도 또한 되지 않으니 몸이 저절로 행하는 바를 따라 정성이 쉬지 않게 된다.
휴산(休算)
  - 휴(休)는 귀는 것이고, 산(算)은 헤아리는 것이다. 하고자 함이 있어 정성을 드리는 사람이 번번이 시작한 날로부터 헤아려서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감응(感應)이 없는가?"한다면 이는 정성을 드리지 않는 것과 같다. 정성을 쉬지 않는다는 것은 정성을 시작한 해도 헤아리지 않으며 또한 정성을 마치는 해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실시(失始)
  - 실(失)은 잊음이며 시(始)는 처음이다. 처음에는 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정성을 드리기 시작하여도 점점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하고자 하는 것은 점점 작아지고 정성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점점 커진다. 또한 점점 참다운 경지에 들어가면 하고자 하는 것은 없어지고 단지 정성을 드리고자 하는 것만이 있게 된다.
진산(塵山)
  - 진(塵)은 티끌이다. 티끌이 바람을 따라 산에 쌓여서 해가 오래 되면 마침내 하나의 산을 이룬다. 지극히 작은 흙으로서 지극히 큰 언덕을 이루는 것은 바람이 티끌을 몰고 오는 것을 쉬지 않아서이다. 정성도 또한 이와 같아 쉬지 않음에 이르면 정성의 산을 이룰 수 있다.
방운(放運)
  - 방(放)은 정성스러운 뜻을 본 받음이며, 운(運)은 정성스러운 힘을 운행함이다. 정성스러운 뜻을 본받아 쉬지 않으면 깜깜한 밤에 밝은 달이 뜨는 것과 같고 정성스러운 힘을 운행하여 쉬지 않으면 한 손으로 삼십만근을 들수 있는 것과 같다. 비록 정성이 있으나 그 정성스러운 뜻이 떳다 잠겼다 하고 정성스러운 힘이 약했다 강했다 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만타(慢他-밖의 일로 게으르지 않음)
  - 만(慢)은 마음에 있지 않은 것이며, 타(他)는 밖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의 한결 같이 생각이 정성에 있고 정성의 한결 같은 생각이 쉬지 않음에 있으면 밖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어찌 싹이 터서 움직이겠는가 ? 그러므로 가난하고 천함이 그 정성을 게으르게 할 수 없고 부하고 귀함이 그 정성을 어지럽게 할 수 없다.
지감(至感)
  - 지감은 지극한 정성으로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감응은 한울이 사람을 느껴 이에 응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느낄 만한 정성이 없으면 한울이 어찌 느끼며 사람에게 응할 만한 정성이 없으면 한울이 어찌 응하겠는가 정성이 지극하지 않으면 정성이 없는 것과 같으며 느껴도 응하지 않으면 느끼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순천(順天)
  - 순천은 한울 이치를 따르면서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한울 이치를 알면서도 거스르게 기도하는 사람이 더러 있고 한울 이치를 모르면서도 성급히 기도하는 사람이 또한 있다. 이는 모두 느낌이 끊어지고 응함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만약 응함을 받는 사람이라면 한울 이치를 따르면서 거스르지 않고 한울 이치를 따르면서 성급하게 하지 않는다.
응천(應天)
  - 응천은 한울 이치에 응하여 정성을 기르는 것이다. 한울이 근심과 어려움을 주면 달게 받아 정성을 어기지 않으며 한울이 길함과 상서로움을 주면 도리어 두려워하여 정성을 게을리 하지 않으니 근심과 어려움은 정성이 없는 데에 돌아가고 길함과 상서로움은 정성이 아닌 데에 속한다.
청천(廳天)
  - 청천은 한울의 명을 들음에 정성을 다할 뿐 그 느낌과 응하심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 나의 정성이 반드시 느낌에 이르지 않았는데 어찌 응하심이 있겠는가?"하니 오래 할수록 더욱 담담해지며 부지런히 할수록 더욱 고요해져서 도리어 정성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낙천(樂天)
  - 낙천은 한울의 뜻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한울의 뜻은 지극히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다. 나의 정성이 깊으면 한울의 느낌도 깊어지고 나의 정성이 얕으면 한울의 느낌도 또한 얕아진다. 한울 느낌의 깊고 얕음이 나의 정성의 깊고 얕음에 따른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까닭에 정성스러워 질수록 점점 즐거워진다.
대천(待天)
  - 대천은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에게 한울이 반드시 느낌과 하심이 있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울을 기다리는데 깊이가 없으면 한울을 믿는 정성이 없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에 한(限)이 없고 정성도 또한 한이 없어야 비록 느낌과 응하심을 겪었다 하더라도 한울을 믿는 정성을 스스로 그치지 않는다.
대천(戴天)
  - 대천은 머리에 한울을 받들고 있는 것이다. 물건이 머리 위에 있으면 가는 털의 무게라도 느낄 수 있다. 한울을 받드는 것을 무거운 물건을 인 것 같이 하면 감히 머리를 기울이고 몸을 굽힐 수 없으니 공경하여 받들기를 이와 같이 하면 그 정성된 뜻이 느끼고 응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도천(禱天)
  - 도천은 한울에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렵다는 사람은 기도를 어렵게 하고 쉽다는 사람은 기도를 쉽게 한다"고 말하나 기도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쉽다고 하는 사람은 기도가 쉽다고 아는 까닭에 정성이 자기 몸에 통하지 못하고, 어렵다고 하는 사람은 기도가 어렵다고 아는 까닭에 정성이 한울에 통할 수 있다.
시천(恃天)
  - 시(恃)는 믿고 의지함이다. 정성이 낮으면 한울을 의심하고 정성이 중간이면 한울을 믿고 정성이 크면 한울에 의지한다. 지극한 정성으로서 세상을 대하면 한울이 반드시 감싸고 도우시어 저절로 의지함이 있게 된다. 지극한 정성을 드릴 때에 다른 위태로움을 행하고 괴이함을 찾으니 어찌 된 일인가 ?
강천(講天)
  - 강천은 한울 도리를 익히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 순(順)하면 한울 도리가 화(和)하고 사람의 일이 거스르면 한울 도리가 어그러지니 순하면 화하고 거스르면 어그러지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항상 마음에 두어 한울 도리를 익힌다. 두려워하고 삼가 마음에서 버리지 않아 정성스러운 뜻이 마침내 한울이 느끼는데 이른다.
대효(大孝)
  - 대효는 지극한 효도이다. 한 사람의 효도가 한 나라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고 또 천하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어찌 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동하면 한울이 또한 감동한다.
안충(安衷)
  - 안은 화하게 함이며, 충은 마음의 깊은 곳이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부모의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부모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면 상서로운 구름이 집을 에워싸고 상서로운 기운이 한울에 닿는다.
쇄우(鎖憂)
  - 쇄는 닫음이요, 우는 즐겁지 않은 일이다. 부모에게 근심이 있으면 자식은 마땅히 없애서 편안하게 해야 하니 그 근심이 있은 뒤에 없애는 것은 부모의 귀에 들리지 않게 하는 것보다 못하다. 설령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황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오직 지극한 정성으로 그것을 할 수 있다.
순지(順志)
  - 순은 화평함이고, 지는 부모님의 뜻이다. 부모님의 뜻은 각기 다르니 자식이 부모의 뜻을 알지 못하면 부모의 뜻대로 할 수 없어서 비록 몸과 집안에 좋은 것을 다해 드려도 항상 평안하지 못한 기운이 있다. 큰 효도를 하는 사람은 부모님의 뜻을 따른다.
양체(養體)
  - 양체는 부모님의 몸을 봉양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몸이 건강하더라도 오히려 적절히 봉양함이 마땅한데 하물며 혹 잔병이 있거나 중병이 있음에야 ! 잔병이면 완전한 몸과 같이 편안하게 해 드리고 중병이면 치료에 빠짐이 없도록 하여야 사람의 자식으로서 효도를 다한 것이다.
양구(養口)
  - 양구는 부모님의 입맛에 맞게 봉양하는 것이다. 넉넉하여 좋은 음식을 차려 드려도 남의 손에 맡기면 봉양하는 것이 아니며, 가난하여 물고기를 잡고 나물 캐는 수고로움을 다하여도 스스로 하는 것이 봉양함이다. 손수 봉양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식성을 알지 못하여 그 좋아하는 것을 놓치게 되고 그 식성의 변화에 어긋나게 되니 비록 물과 바다의 온갖 음식을 올려도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큰 효도를 하는 사람은 봉양할 줄을 알아 오미(五味)가 식성에 맞게 하고 사계절에 제철이 아닌 음식을 차려 드리므로 진실로 한울이 그것에 감동한다.
신명(迅命)
  - 신은 빠름이며, 명은 부모님의 명령이다. 부모님의 명령이 있으면 자식은 반드시 받들어 행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명령은 자애로운 명령이므로 자애로운 사이에는 엄하게 분부하고 독촉함이 없다. 만약 앞뒤가 서로 어긋나고 완급이 마땅함을 잃으면, 입으로는 비록 말씀하시지 않더라도 뜻은 곧 새로이 하시니 이런 까닭으로 큰 효도는 남김없이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망형(忘形)
  - 망형은 자기 몸을 잊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님을 섬기는데 감히 그 몸을 생각하지 않음은 깊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니 오직 이를 알아서 감히 자신의 몸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의 몸을 잊지 않음은 도리어 그 몸을 생각하는 것이니 큰 효도를 하는 사람은 부모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그 몸을 잊어버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그 몸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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