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계 > 단군의 신앙 > 생사론
 
01. 단군은 누구신가? 09. 3대 축복 17 생사론 25. 양심론
02. 개천절 10. 삼신신앙과 세계종교 18 덕화론 26. 숭조론
03. 어천절 11. 신관 19 신앙론 27. 천지인 원리 (天地人 原理)
04. 단군의 가정 12. 내세관 20 천손론 28. 가정론
05. 제자들과 그 직분 13. 가치관 21 윤리론 29. 단군종교의 긍지
06. 경(經)과 믿음 14. 홍익인간론 22 신인론 30. 구원관
07. 천진 15. 단군의 땅과 영광 23 실재론 31. 단군의 예언
08. 천단 16. 선복악화론 24 단군을 받드는 이유 32. 단군의 종교 -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역사
 
단군의 생사론(生死論)
      
홍암대종사께서는
    " 인간의 죽고 삶이 몸뚱이 껍데기에 있지 않고
    믿음과 의리는 오직 신명으로 증거 되느니라
    ( 生死不在軀殺 信義性證神明 ) " 라고 하시었다.   

  옛부터 사람이 오래 살다가 죽으면 '천수(天壽)'를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께서 1908세로 이 세상을 떠나서 산신이 되셨다고 하고 다른 기록에서는 217세를 사시었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아담이 930세 그의 아들 셋은 920세를 살았고 그의 후손 노아는 950세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북이와 학은 천년을 산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사는 인간이나 짐승, 생물은 지구상에 많지만 영원히 사는 피조물은 없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타락으로 무지(無知)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은 생에 대한 애착만 강할 뿐, 천리(天理)를 잃어 100수를 못하는 수많은 군상을 보면서도 썩어질 육신으로 영생(永生)을 하겠다고 아득함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났다가 이 땅을 떠났다. 천년 이상 살아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단군 한배검께서는 "사람의 몸은 자신의 신령한 영혼이 살고 있는 집이요, 또 그 영혼이 몸 전체를 부리는 바라" 라고 하시었다. 우리의 육신은 영혼이 사는 집에 불과하다. 우리의 참 실상(實像)은 보이는 육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혼이다. 자기 영혼을 잘 닦는 이가 자기의 참 실체를 찾는 이이다.


(1) 육신의 죽음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분 지어 말 할 수 있다.
영혼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육신의 주인이 되어 살고 있다. 육신은 보이는 오관을 통해 보고 듣고 감각하고 말하고 맛을 느끼는 것을 통해 생존을 확인하고 자연의 각종 영양소를 섭취하여 생존을 유지해 나간다.

삼일신고의 말씀대로 청수탁요(淸壽濁妖)이니 맑으면 오래 살고 탁하면 일찍 죽는다.
욕심 없이 맑고 밝은 마음을 간직했던 옛 선인들은 이 세상에서 수 백년 동안 마음껏 천수(天壽)를 누리시다가 돌아갈 세상을 아시고는 변화하여 본연의 세상으로 돌아가시었다. 우리 홍암대종사께서는 돌아가는 순간은 경사롭고 기쁜 순간이니 곡(哭)을 하지말고 노래를 불러 거룩하게 영득쾌락의 기쁨을 맞이하라고 하시었다.

맑음으로 오래 살면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죽음은 하나의 변화요, 천리의 조화일 뿐이다. 그러나 가달에 '빠진 어리석은 무리들은 탁하여 일찍 죽음을 마지 하는데 그것은 고통이요, 괴로움이며 지옥이다. 그러기에 슬피 울고 통곡하며 온갖 고통을 체험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육신의 죽음은 가장 괴로운 순간이 된다.

  한얼 누리에 속한 이에게 죽음이란 모든 공적을 마치고 육신을 벗는 것이니 환희와 쾌락이 함께 하는 대 길상 한 기쁨이지만 마귀의 누리에 속한 이에게 죽음은 세상에 공적이 없어 두려움과 온갖 고통을 동반하는 대 심판의 지옥이 된다. 육신의 죽음이 평온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는 한얼 천궁이 자신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요 육신의 죽음을 두렵고 고통 속에 맞이하고 있다면 육옥의 지옥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자리에서 두려움과 괴로움이 다가 오면 지난 가달을 뉘우치고 그 시간부터 계만선(階萬善)의 공적을 쌓아야 한다. 공적을 쌓지 않으면 영혼이 가지고 갈 것이 없고 갈 곳을 모르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공적을 쌓는 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갈 영혼의 양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육신이 거하던 대궐 같은 집도 자기 육신이 죽음을 맞게 되면 주인이 바뀐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육신이 거하는 동안에만 내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값비싼 장신구나 아름다운 옷도 자기 육신이 스러짐과 동시에 내 것이 아니다. 후손에게 나누어지거나 태워 없어진다. 이 땅에서 즐기던 맛난 음식도 내 육신과는 상관이 없게 된다.

육신의 스러짐과 더불어 세상의 모든 것은 허상이 된다. 그러므로 육신의 허상을 쫓던 어리석은 인간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게 된다. 자기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목놓아 슬피 울며 몸부림치게 된다.


(2) 가달 빠진 영혼의 죽음

  한얼의 신령을 간직하지 못하고 자기 머리 골에 내리신 한얼을 알지 못하여 타락의 아득함에서 가달 된 삶을 산 육신은 땅에서의 공적도 쌓지 못하고 한얼의 보배로운 빛을 받지 못하므로 육옥의 지옥에서 헤매게 된다. 사과나무가 고른 햇빛을 받고 알맞은 온도와 습도 영양을 취하여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 주인은 기쁜 마음으로 추수를 하여 곡간에 들이게 된다. 그러나 같은 햇빛을 받을지라도 뿌리가 병들고 벌레가 먹어 버리면 주인은 사과나무를 베어 버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한얼님의 참정기를 보전하여 계만선(階萬善) 문만덕(門萬德)하면 성통공완인(性通功完人)이 되어 대길상(大吉祥) 한 천궁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육신을 잘 보전하지 못하고 가달된 마귀의 누리에 빠져 영혼의 공적을 키우지 못한 죄인은 세상에서 제멋대로 악을 쌓은 만큼 용서 없이 심판하여 육옥의 고통 지옥에서 헤매게 된다. 이것이 가달에 빠진 영혼의 죽음이다.

들에 피는 꽃 한 송이, 우짖는 새 한 마리도 기르시고 키우시는 만물의 영장인 하느님께서 어찌하여 만물의 주인으로 지으신 자녀들로 하여금 큰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하시는가 1,2차 세계대전으로 지구상에서 1억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짐승보다 못하게 비참하게 숨져 갔다. 하느님이 사랑하는 자녀들 일진데 어찌 무자비한 죽음의 심판을 하셨을까

  하느님은 살아 계시는가 ?
하느님은 살아 계신다. 하느님께서 사랑할 만한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 영혼을 깨우치지 못하고 한얼의 보배로운 빛으로 살지 못한다면 이는 금수와 같다 인간의 허물은 쓰고 살지만 하느님의 성령이 그 안에 머물지 못하니 짐승보다 못한 것이다. 참 성품을 깨닫고 그 영혼에 참 얼을 간직한 참사람이 없었기에 심판을 하신 것이다. 지금도 한얼께선 지구촌 곳곳에서 지진과 기근으로, 물과 불로서 징계하신다.


(3) 영생의 삶

  우리의 육체는 영혼이 사는 집이요. 영혼의 허물이요 껍데기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살고 죽음은 몸뚱이에 있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영혼의 믿음과 의리로 밝혀진다고 하였다. 한얼로부터 받는 참성품 참정기 참목숨을 잘 닦아 나아가면 성통하여 하느님의 참모습을 느끼게 된다.

자식이 철들면 부모의 심정을 느끼듯, 제자가 깨닫고 스승을 모시듯, 백성이 어질게 임금을 공경하듯 한얼의 씨알이 우리 안에 싹트고 자라 한얼 기틀이 열리면 온갖 조화와 교화와 치화의 공적이 쌓여지게 된다. 깨달은 영혼은 영생을 얻는 쾌락의 기쁨을 누리고 대길상의 영검함을 누리게 된다. 죽음에 이르면 한얼 나라의 군령(뭇 신령)과 제철(모든 밝은이)이 맞이하여 하느님이 계신 천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영생이다.

육신은 영생할 수 없다. 영생은 오직 완성한 영혼이 한얼의 본자리로 삼신귀일할 때 이루어진다.
한얼님이 영원하듯 완성한 우리 영혼도 한얼님과 함께 천궁에서 영원한 쾌락을 누릴 수 있다.
육신이 영생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종파나 도계(道界)는 하나같이 인간의 무지와 허상을 이용하는 사이비종교임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영생(永生)이란
한얼의 참성품을 깨달아 계만선 문만덕의 공적으로 한얼님의 참 얼, 즉 성령으로 사는 자이다. 이는 영원한 한얼 누리에서 영원히 사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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