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계 > 단군의 신앙 > 실재론
 
01. 단군은 누구신가? 09. 3대 축복 17 생사론 25. 양심론
02. 개천절 10. 삼신신앙과 세계종교 18 덕화론 26. 숭조론
03. 어천절 11. 신관 19 신앙론 27. 천지인 원리 (天地人 原理)
04. 단군의 가정 12. 내세관 20 천손론 28. 가정론
05. 제자들과 그 직분 13. 가치관 21 윤리론 29. 단군종교의 긍지
06. 경(經)과 믿음 14. 홍익인간론 22 신인론 30. 구원관
07. 천진 15. 단군의 땅과 영광 23 실재론 31. 단군의 예언
08. 천단 16. 선복악화론 24 단군을 받드는 이유 32. 단군의 종교 -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역사
 
단군의 실재론(實在論)
   
   역사 교육을 잘못 받은 사람들은 "단군"하면 옛날 이야기로 치부 해 버리거나 우상이니 신화니 하여 단군의 실재 역사마저 부인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서 한민족임을 세계에 드러내는 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삶의 원초적 근원과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한다면 이야말로 스스로 지성인임을 포기하고 무지한 야만인으로 후퇴하는 일이다.

한민족에 있어서 "단군의 실존"이 있으므로 그 자손들이 배달 자손으로 이어졌고 그로부터 우리 역사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나의 시작은 부모요, 조상이요, 계속 위로 이어지면 결국은 단군으로 귀결된다. 최초의 단군 할아버지의 피와 살을 이어 씨족이 이루어지고 종족이 이루어지고 민족을 이루어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자식의 공부가 부족하면 부모는 선생님을 모시어 공부를 시킨다.

종교적 교육도 예수나 석가, 공자를 닮고저 하거나 믿고 따름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혈통 줄의 근본은 부인하거나 바꿀 수 없다. 내 부모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다거나 불구라 해서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는 하늘의 천리이다.
단군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자기의 실존은 인정하면서 자기를 낳아 길러 준 부모의 실존은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현재는 인정하면서 과거를 부정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어찌 자기를 있게 한 부모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현재가 있는데 어찌 과거와 미래를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참으로 해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단군을 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 신화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


  「신화」라는 말은 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인물 치고 신화가 없는 분은 없다. 신라의 시조이며 박씨의 시조이신 박혁거세는 기원전 57년경에 양산 기슭 숲 속에서 표주박 같은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 하여 표주박 박씨라 하였다.

가야국의 시조인 수로왕도 신라 유리왕 19년에 금관국 북쪽 구지봉에 떨어진 6개의 황금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기원전 65년 탈해왕 9년 금성 서쪽 계림 숲 속에서 금함(金函)으로부터 나왔으므로 김씨라 하였다. 고구려의 시조이며 고씨의 시조인 고주몽도 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충주 어씨의 시조 어중익은 원래 지씨였으나 날 때부터 체모(體貌)가 기이하고 겨드랑에 고기 비늘이 있어 고려 태조로부터 어씨로 시성 받았다. 이 모두는 건국(建國)과 성씨(姓氏)에 얽힌 신화이다.

세계 종교의 신화를 보면 기독교의 여호와 신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코에 생기(生氣)를 넣어 사람을 만드시니 유대인의 시조 아담이라는 남자를 만드시었다. 그 후 그가 독처(獨處)하는 것이 외로우므로 그의 아내인 이브를 아담이 깊이 잠들게 한 후 오른쪽 갈비뼈를 뽑아 만들었다는 신화가 있다.

불교의 교조 석가님은 코끼리 7마리가 그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의 뱃속으로 들어가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했다고 하는데 탄생하시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을 했다는 신화가 있다. 도교의 교조(敎祖) 노자는 그의 어머니 뱃속에서 80년 만에 백발노인으로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다.

이처럼 건국의 시조나 종교의 교조, 성씨의 시조이든 역사적 인물에게는 신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만약 이 신화가 과학적 근거나 역사적 사실이 없다고 해서 부정한다면 나라의 건국 시조나 세계 종교의 교조나 성씨의 시조 모두를 부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삼국(三國)의 역사도 없는 것이며 박씨, 김씨, 고씨도 결국 신화의 후예(後裔)임으로 부정되어야 하며 종교의 교조인 예수, 석가, 노자도 모두 실존(實存)이 아닌 가상의 인물로 부정해야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이없는 일인가 ?

  옛글(古記)에 나타난 단군 역사는 예수, 석가, 고주몽, 김수로왕보다 2000년이나 앞서 생존하신 분이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나 석가, 노자, 고주몽은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존 인물로 인정하면서 우리 국조 단군님만을 신화라 해서 부정하는 심사가 참으로 애통(哀痛)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선시대의 정통 사서(史書)인 동국통감(서거정 1486)에서도 분명히 단군 조선으로 표기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인 동몽선습(박세무 1759)에서도 단군의 역사와 시원을 말했지 단군신화라는 말 자체나 문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신화라는 낱말은 어디서 근원을 두었을까 그것은 일제가 우리 역사 말살의 시작인 조선사편수회가 발족되던 1930년대 초에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34년 7월 20일 소위 총독부 중추원에서 열린 조선사편수회에서 육당 최남선 선생은 단군과 기자에 관한 역사를 강조 했고 동경대 구료이타 교수는 단군과 기자는 역사적 실제 인물이 아니고 신화 속의 인물임을 강조하였던 것이 그 결정적 단서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의 신화는 우리 역사를 왜곡 말살하려는 일본인으로부터 근원이 되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역사가 우리 보다 짧으니까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식민지 사관이요, 외래 종교가 민족 종교를 말살하려는 농간임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2) 역사에 나타난 단군실사(檀君實史)의 기록을 보자

  1) 고운 최치운 선생이 지은 [조선사략]을 보면,
     단군께서 한얼 사람으로서 상원 갑자년(단기앞 125년) 10월 3일에 나리시어 무진년 10월 3일에 임금이 되셨다가 경자년 3월 15일에 한울에 오르시니 임금자리에 93년이요, 수는 217년이다. 당나라 요임금 25년 무진년에 나라 사람들이 그 한얼사람을 받들어 임금으로 삼으니 나라 이름을 배달 ( - 밝달)이라 하였다.

옛적에 환인 시대인 하나라 시대와 한배웅 시대인 신시 시대가 있었다. 상원 갑자년에 한얼 사람이 천부인 3개를 가지고 한밝산 밝달나무 아래에 내려 와서 신교를 베풀어 백성들을 교화시키니 나아 오는 자들이 저자 터와 같았다. 무진년 음력 10월에 이 무리들이 그 한얼 사람을 받들어 임금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니 이분이 배달 임금으로서 곧 단군이시다.

이 때 비로소 남녀와 부자, 군신의 길을 가르치고 의복, 음식 집짓기 등의 제도를 마련하였다. 팽우를 시켜 산천들을 다스리고 험하고 평탄한 곳들을 서로 통케 하여 백성들의 살 곳을 정해 주었다. 단군께서 하백의 따님을 부인으로 삼고 네분의 아드님을 두시니 부루 부우 부소 부여이다.

2) 중국학자 동작빈(童作賓)의 단군 기원 연대수라는 표문에 보면
   " 동해( - 배달 나라)에 성인이 일어나니 요임금과 같은 때라 산이마에 옛 사당이 남아 있어 배달 나무들이 상서로운 구름을 끼고 있도다 단군이 나라 땅을 열어 풀 포기들을 베고 나무들로 구역을 정하니 나라 사람들이 조선의 시조라 한다. 단군께 드릴 제사를 동토에 전하오니 삼한과 오읍들이 어찌 시끄러운고 단군이 조선의 제일 시조더라 "라고 했다.

3) 조선시대의 정통사인 동국통감
    " 동방에 처음 임금이 없더니 신인이 밝달나무 아래 오르고 나라 사람들을 뽑아서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분이 단군이요 나라 이름은 조선이다 "

4) 임진왜란 때 도승지 이항복은 왜병의 침략을 받고
   " 원래 우리라는 단군 성조의 창조물이다. 이제 우리 대에 와서 그 역사를 훼손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어나 단군 조국의 창조 정신을 굳게 받들어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보존과 전통 문화를 길이 계승 유지하여야 도리가 된다. 분연히 일어나 단군 창조의 성업을 계승하자.

5) 동학 최해월 선생은
   " 오직 우리 청구는 단군 기자로부터 수 천년에 신성의 교와 인현(仁賢)의 화(化)가 거듭 빛났다"

6)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 시조 단군은 한민족 조선의 시조이시다.
   단군의 홍익인간과 리 민족의 정통 문화를 발전 계승해야 한다"

7) 그밖에 삼국유사, 제왕운기, 단군세기, 규원사화등 고대사에서 단군이 기록되지 않은 책이 없다.
   배달 역사는 모두 단군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호란과 왜란의 침략기에 단군의 고귀한 서적들이 수십만권이 불태워지고 없어져 스스로 단군의 실존사를 저 버린 통한의 역사 앞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 아닐 수 없다


(3) 단군 문화 유적의 자취를 통한 실존사(實存史)

1) 마리산 (단기고사)
   제위 125년 11월 5일에 셋째 아들 부우를 강화에 보내어 전등산에 삼랑성을 쌓게 하시며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한얼님께 제사 하시니 동방의 민족이 한얼님께 제사하는 풍습은 시조 단군 때부터 시작되었다. 천단 제도는 천일(天一)지이(地二)를 따라 돌을 두 개 세우고 그 위에 돌 하나를 덮었다. 제위 93년에 한울에 오르시니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사해가 다 음악을 그치고 집집마다 신조 단군의 신위를 세우로 아침 저녁으로 경배하였다. 서여(西余)임금 12년에 제 1세 국조 단군전을 평양에 세우고 단군의 화상을 모셨다는 기록이 생생이 남아 있다.

2) 구월산 어천대(御天臺). 고구려의 등고신묘(登高神廟). 성제사
   단군께서 세상일을 모두 마치시고 한울에 오르신 곳이 구월산 어천대이다. 그곳에는 삼성사가 있어 단군께서 거룩하게 한울에 오르심을 기념하는 행사를 계속해 왔다. 고려에 와서 임금께서 친히 제사를 올렸고 또 초하루와 보름에는 관리들로 하여금 제사를 올리게 했다. 조선 제 3대 태종 임금 13년에는 단군과 기자를 비롯하여 여러 제왕들에게 제사를 드리게 했다. 제 4대 세종 임금 때에는 평양에 있는 단군 묘인 성제사를 세 채의 집으로 고쳐지어 단군과 고구려의 동명 임금의 위패를 고쳐 [朝鮮朝鮮始祖 檀君神位]라 하고 임금께서 친히 좌의정 신숙주를 비롯하여 문무 관리들을 거느리고 평양에 가서 제사를 올렸다.

  성종실록을 보면 태종 임금 때에 삼성당을 폐지하고 단군 묘에 합하였다. 그러자 그 때부터 악질이 구월산 밑 마을에서 시작하여 황해도에 퍼졌다. 온 나라로 계속 번지자 다시 삼성당에 단군을 모시고 제사 올리기를 간절히 원하였으므로 임금인 성종께서 삼성당의 이름을 삼성사라 하고 그 안에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桓儉)의 삼성(三聖)의 위패를 모시고 평양 단군 묘의 표준에 따라 해마다 향촉을 내리시어 제사를 올리게 했다. 이 제사는 일제가 침략하던 1910년에 폐지 시켰고 그 집터의 재목을 팔아 자취를 없앴다.

그 외에 지금도 평양에 남아 있는 숭령전, 신라 고운 선생이 남긴 묘향산의 천부경 석벽 말씀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실존 역사를 증거 해 주고 있다. 이밖에도 현재 남해 금산에 단군 성전을 세우신 김연섬 여사(70세)의

계시적 실존성
  김 여사님은 원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보다 부지런하고 덕이 있으시어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 하셨다. 손수 재봉으로 방석을 만들어 교회, 사찰, 그리고 양로원 등에 나르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손닿는 대로 선행을 쌓았다고 한다.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나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닌 자기의 본성에서 나온 선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부터는 내 일을 하자 나는 단군이다 !"라는 계시를 받으셨다.

갑자기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니 웬 귀신인가 하고 마구 부정하셨다고 한다. 양반 집에서 자라 평범하게 결혼을 한 주부였던 김 여사님으로서는 처음으로 느끼는 영적 체험이었으므로 한동안 몸둘 바를 모르고 방황했다고 한다.
현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아 한글도 깨우치지 못하셨던 김 여사님에게 단군 할아버지께서는 친히 단군께서 우리 배달의 시조임을 밝히시고 구름 위에 '가'자 '나'자를 써서 글자를 가르치셨다. 또한 단군의 진리로서 천부경, 삼일신고가 있음을 가르치셨다. 그렇게 해서 한글은 물론 한문과 한국 중국의 고대 역사까지 공부하시게 되었고 결국은 단군의 신명(神命)에 따르게 되었다.

마리산 참성단도 단군 한배검께서 직접 인도하시어 정성의 제단을 쌓게 하셨고 남해 금산에는 10억 이상을 들여 단군 성전을 짓게 하시었다. 지금도 김 여사님은 말씀 없이 말씀하시고 모습 없이 모습 하신, 함이 없이 하시는 단군 한배검의 실존을 느끼시고 말씀을 따라 단군 한배검의 일을 하고 계신다.

중국 동포 김 여사(60세)의 계시적 실존성
  조선족 자치주에 살고 있는 김00 여사님은 이미 9살 때 백두산의 한 도인이 업고 들어가 3년간 백두성산에서 수도를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였으므로 무조건 도인이 시키는대로 했다고 한다. 이분도 세상 교육을 받지 못해 단군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 신령한 기운을 얻어 조화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내가 조선족의 시조 단군이다"하시며 그 영혼을 지배하는 큰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0월 3일 천제 봉행도 단군 한배검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어 깨닫고 봉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국내 사정이나 가정의 여러 가지 환란 속에서도 단군에 대한 신앙심을 꿋꿋하게 지켜 오셨다. 역사 서적이나 종교 등을 전혀 접 해 보지 않았던 김 여사님의 단군 신앙 체험 또한 참으로 기이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단군 한배검의 천진을 모시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다.

단군 한배검께서는 국경이나 시공을 초월하여 착하고 양심적인 우리 배달 자손들에게 친히 조화로, 교화로, 치화로 나타내신다. 낮에는 태양처럼, 밤의 보름달처럼 환하게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다. 우리의 피와 살이 누구로부터인가 결국 단군으로부터 받은 피 살 일진대 속히 우리의 어리석음이 죄임을 고백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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