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계 > 단군의 신앙 > 양심론
 
01. 단군은 누구신가? 09. 3대 축복 17 생사론 25. 양심론
02. 개천절 10. 삼신신앙과 세계종교 18 덕화론 26. 숭조론
03. 어천절 11. 신관 19 신앙론 27. 천지인 원리 (天地人 原理)
04. 단군의 가정 12. 내세관 20 천손론 28. 가정론
05. 제자들과 그 직분 13. 가치관 21 윤리론 29. 단군종교의 긍지
06. 경(經)과 믿음 14. 홍익인간론 22 신인론 30. 구원관
07. 천진 15. 단군의 땅과 영광 23 실재론 31. 단군의 예언
08. 천단 16. 선복악화론 24 단군을 받드는 이유 32. 단군의 종교 -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역사
 
단군의 양심론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이성(理性)이라는 고귀한 축복을 부여받았다. 이성의 속성은 참성품, 즉 진성(眞性)이다.
진성은 하느님을 바로 보고 교류하는 성통(性通)의 자리요, 자연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만물 영장의 특성이다. 이 주관 특성이 없으면 힘이 센 동물이나 지혜로운 만물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물이 가진 어떤 지혜나 어떠한 신비의 힘도 인간의 진성주관 특성 앞에 굴복하고 정복당하게 된다.

하느님은 우주의 존재를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은 전지(全之)하게 만물은 편지하게 창조하시었다. 하느님은 인간이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주물권을 주신 것이다. 아울러 인간에게 양심이라는 윤리 본능을 주시어 하느님의 창조의 뜻에 준하여 살게 하시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양심은 하느님이 운행하시는 초소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윤리 본능이다. 이 윤리 본능(倫理 本能)을 저버리는 사람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을 저버리는 것이요 인간 이성의 주관 특성이 상실되어 만물보다도 더 못한 동물 인간으로 타락되고 만다.

현대의 인간은 이미 양심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성의 속성인 진성은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축복하신 주관 특성마저 상실하여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저버리고 풍요와 자유로운 창조에서 빈곤과 억압의 어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또한 만물은 주관자를 잃게 되어 우주의 기근과 지진과 이상 기온, 괴이한 기형의 동식물들이 무질서하게 솟아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무지로 하여금 발생되는 현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1)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양심

  하느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 - 능치 못함이 없으시고)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 - 어디든지 계시고)하시며 소소영영( - 밝고 환하게 존재하신다)하시다. 우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 앞에 낱낱이 드러나 비추어지는 것이니 내 몸의 행위는 물론이요, 내 마음 속의 생각까지도 환하게 알고 계신다. 내 양심은 창조주 하느님의 초소가 된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착한 일을 했을 때 양심은 기뻐하며 대 길상하고 대 광명한 빛을 마음속에서부터 육체에까지 투사된다. 그러므로 육체의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피가 맑고 온몸에 기가 팽배하여 얼굴색이 빛을 발한다.

순하고 착함으로 '덕명(德明)'이 발하게 되는 것이니 진심으로 기도하고 정성을 드리는 사람은 그 덕명의 보배로운 빛을 볼 수 있다. 그 빛과 더불어 살 때 천궁의 삶이요 그 빛이 서로 교류 될 때 이화세계가 이루어진다. 창조주 하느님은 그 세계를 보시고 기뻐하시며 인간 역시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각 종교의 선지자가 되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고 있다.

사람에게 양심이 가리우게 되면 하느님 앞에 양심이 빛을 잃으며 하느님의 보배로운 기운이 끊긴다. 세상에서 말하는 천운(天運)이 작용하지 않는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출세하기 어렵고 명예가 빗나가거나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또한 조상의 선한 기운이 내리지 못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 험한 기운이 가까이 못하게 하려면 조상들의 선기(善氣)를 받아야 한다.

신앙인들이 교회에 나가 찬송을 하고 절에 나가 염불을 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노력일진대 조상을 위해 명당을 찾고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숭배하는 의식은 자손들의 안락을 찾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도, 종교적 신앙 행위도 조상 숭배의 정성도 하느님 앞에 양심이 부끄러울 때는 천기(天氣)와 선기(善氣)가 파괴되어 운행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는 자는 자기 종교의 신앙 양심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본 양심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2) 땅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양심

  한 송이의 꽃을 보자 피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과 피어나는 그윽한 향내는 누구를 위함인가 짐승은 그 느낌을 느낄 수 없다. 먹을 수가 있다면 먹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향내를 음미할 줄 아는, 그 가치를 인정하는 유일한 주인이다. 어둠을 밝히는 태양도 달도 결국 수많은 만물 중에 나를 위하여 밝히는 것임을 각자가 깨달을 때 만물 각자의 창조적 조화의 가치가 스스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이 위대한 대자연의 신비한 조화도 인간이 양심을 잃어 버리면 태양이 빛을 잃듯 보름달이 구름에 감추이듯 빛을 잃게 된다. 내 양심이 빛을 잃으면 그 빛은 계속 어둠으로 어둠으로 기울어 간다.
최고로 발달한 문명의 이기(利器)도 그것을 쓰는 주인이 양심을 잃어버리면 무서운 흉기로 변한다 칼을 든 주인이 요리사라면 그 칼에서 맛난 요리가 나오겠지만 주인이 강도라면 사람을 해 하는 흉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늘 먹는 음식에게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의로운 사람이 먹는 음식은 좋은 영양이 되어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지만 악인이 먹는 음식은 악의 힘을 일으키는 영양이 되어 사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꽃 한 송이를 볼 때나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를 볼 때나 자연 만물의 그 무엇을 보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내가 되어야 한다. 만물을 축복하는 참 성품과 만물 주관 특성에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3) 인간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양심

  나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부끄러움이 없이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있는가 효도하여 사람된 도리를 다하는가 낳아 놓고 기뻐하시던 그 모습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늘 자문 해 보아야 한다. 부모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라면 세상 앞에 당당해 진다. 이 당당함은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힘이 된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조상 앞에 양심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 선기의 흐름이 꺾여지므로 모든 면에서 소극적이고 용기가 없어진다. 형제 앞에서도 자식 앞에서도 스스로의 죄책감으로 참다운 삶이 찌그러지게 된다. 권세를 얻은 것 같아도 명예와 물질을 취한 것 같아도 결국은 권세를 누린 만큼 상처가 크고 명예를 누린 만큼 불명예와 가난의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

세상 누구라도 이 양심의 천리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양심이 두근거리는 행동은 멈추어야 한다.
양심에 걸리면 바로 그 자체가 브레이크인 것이다. 그럴 때 행위의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지 않으면 결국엔 충돌이 되어 산산히 파괴되고 만다 그러므로 양심이 두근거리면 즉시 뉘우치고 참회하여 양심의 본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앞사람 뒷사람 누구를 보아도 양심의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것이 삶의 기쁨이요, 행복이다 단군은 민족 양심의 본 자리이시며 우리 인간 영혼의 실체로 지금도 내 안에 존재하신다. 이에 부끄러움이 없이 오늘을 사는 양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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