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계 > 단군의 신앙 > 만물론
 
01. 단군은 누구신가? 09. 3대 축복 17 생사론 25. 양심론
02. 개천절 10. 삼신신앙과 세계종교 18 덕화론 26. 숭조론
03. 어천절 11. 신관 19 신앙론 27. 천지인 원리 (天地人 原理)
04. 단군의 가정 12. 내세관 20 천손론 28. 가정론
05. 제자들과 그 직분 13. 가치관 21 윤리론 29. 단군종교의 긍지
06. 경(經)과 믿음 14. 홍익인간론 22 신인론 30. 구원관
07. 천진 15. 단군의 땅과 영광 23 실재론 31. 단군의 예언
08. 천단 16. 선복악화론 24 단군을 받드는 이유 32. 단군의 종교 -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역사
 
단군의 천지인 원리 (天地人 原理)
       천부경은 한울과 땅과 인간의 무궁한 조화와 창조, 그리고 변화를 말씀하신다. 한울의 조화로운 운행과 땅의 생성, 그리고 만물 창조에 대한 신비함을 밝히신다. 더불어 인간의 천리(天理)를 대자연과 합일시켜 조화(造化)와 생성(生成)의 원리를 설명해 주신다.
하늘은 둥그렇다 하여 원으로 상징했고 땅은 동서남북 상하사방을 나타내는 네모꼴로 상징했고 사람은 그 형상을 따라 삼각으로 표현했다. 색상으로는 한울을 푸른색으로, 땅은 노란색으로 인간은 붉은 색을 나타냈다. 민족종교인 대종교에서는 한얼기(天旗)에 이 원방각을 쓰고 있다. 원방각은 ○□△를 합하여 으로 나타내고 원(圓)은 푸른 바탕으로 방(方)은 노란색으로 각(角)은 붉은 색으로 나타낸다.
한울 땅 사람의 아름다운 조화는 대자연의 순리요 한얼의 천리를 따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천지인의 원리를 생활과 신앙 속에 승화시켜 설명해 보고저 한다.

(1) 한울(天)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한울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위의 시인이 말하듯이 우리는 한울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끄러움 없는 삶의 규범은 각 나라, 각 시대에 따라 성인들을 통하여 교화하시었다. 예수를 통해 서양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게 했고 마호멭을 통하여 아랍 지역에 말씀을 내리셨고, 석가를 통하여 인도 주변에 진리를 설하셨으며 공자를 통하여 동아시아 지역에 삶의 규범을 정하여 주셨다.
우리 배달 자손들에게는 특별히 단군님을 통하여 백두 천산에서 천손의 도리와 사명들을 일깨우셨다. 나라와 시대와 종교는 달라도 한얼의 말씀과 진리는 그 맥을 같이 한다.

저 푸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이, 밝은 태양과 달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 그것이 참사람의 삶이요, 신앙인의 모습이요, 사는 道理라 하겠다. 우리는 하느님의 위대한 진리 앞에, 세세히 이르시는 말씀 말씀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한다.

예전에 어른들은 도리에 어긋나는 철부지한 모습들을 보면 "예끼 이놈 한울 무서운(두려운)줄 알아라"고 호통을 치곤 하셨다. 이 말씀은 최후의 경고이기도 하고 엄한 사랑의 표현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단군님의 말씀 중에 順天의 가르침이 있다. 한울 이치에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한울 이치를 알면서도 거스르는 사람이 있고 모르면서 무조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이 모두 느낌이 끊어져 한울의 응함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한울의 이치를 따르면서 진리를 거스리지 말고 성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한울 이치를 새기며 그 이치 앞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영혼의 삶이 원전(圓轉)의 둥근 삶, 즉 모남이 없고 언제나 부드럽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종교 중에 원불교인들은 신앙의 상징물을 ○으로 두고 원(圓)의 원리를 가르치는데 신앙의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종교나 정치, 주의 사상을 넘어서 자기의 양심 앞에 한울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한다.

(2) 땅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야 한다.

  삼일신고에 보면 [인간은 전지하고 만물은 편지하게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만물 중에 빼어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을 주관하며 살아 갈 수 있는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 만물주관 축복은 한얼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축복이다. 인간은 이성적 주관으로 지혜롭게 땅을 다스리며 자연을 주관해서 지상낙원, 즉 땅위의 천국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이기를 위하여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땅을 파헤치고 물을 오염시키며 산의 경계를 해치고, 곳곳에 공장을 지어 유독가스를 배출했다. 급기야 공기도 자연도 시름시름 병들기 시작하더니 이상기온이 시작되고 곳곳에 냉해와 홍수등 무서운 재앙을 자초하고 말았다. 땅과 인간과 대자연의 조화는 공생공영(共生共榮)의 삶이요 길이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서는 안된다.

2000년(서기4333년) 6월 27일 22번째로 백두산에 올랐다. 신발은 서울에서 신던 캐주얼화를 신었고 옷은 한복을, 모자는 밀짚모자를 준비했으나 햇빛이 받고 싶어 그냥 들고 산에 올랐다. 국제환경보호국이 보호하는 대 자연의 보고(寶庫)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여섯시간을 오르는 동안 행여 내 발 밑에 작은 풀이라도 깔릴새라 사뿐히 발걸음을 옮겼다. 온갖 신비함이 온 몸에 젖어 들었다. 천지 못의 물을 한 줌 떠서 삼키며 난 기원했다.

    아 ! 한울 못이여
    생명의 신비여
    물의 근원이시여
    지구촌 목마름을 적셔 주소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맑게 하소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겸손케 하소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씻어 주소서
    그리고
    생명의 물을 먹이소서

  태양은 아침부터 해가 지도록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천산의 태양으로 가달을 태우고 천지의 물로 거듭나리라. 그 후 얼굴을 한 꺼풀 벗고 팔뚝은 뜨거운 태양 빛으로 물집이 터져 쓰렸지만 육신의 가달을 태웠다는 기쁨에 감사 할 뿐이었다. 천지의 출렁이는 물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천산의 백두봉 앞에 한 점의 부끄러움 없는 삶. 이름 모를 온갖 꽃과 신비한 대자연의 조화로움 속에 참으로 부끄러움이 없는가 풀밭에 머리를 대고 누워 한울을 보며 내 속을 헤아려 보았다.

(3) 사람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면 된다. 가정에서 부모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식이라면 훌륭하게 자식의 도리를 다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부모의 모습이라면 참으로 모범 된 부모라 할 수 있다. 자식들이 볼 때 존경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내(남편)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부부라면 행복하고 이상적인 부부(가정)라 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장이 사원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사장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원이라면 그 회사는 발전하는 회사가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라면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자기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수행과 정성에 정진 해 가야 한다. 그래도 가다 보면 실수가 있고 가달에 헤매 일 수 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채 나라로 가던 중 어려움을 만나 일주일을 채소만 먹고 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수제자인 안희가 스승의 모습을 안타까이 여겨 일행이 쉬는 틈을 이용하여 마을에 들어 가 어렵게 쌀을 구해 밥을 지었다. 공자님은 피곤에 지쳐 잠을 자던 중 밥 짓는 냄새가 나서 눈을 떠보니 때 마침 안희가 솥뚜껑을 열고 뜨거운 밥을 한 줌 떠 입에 넣는 것이 아닌가. ' 어찌 착한 안희가 저럴 수가 있을까 평소에 안희는 내가 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 수저도 대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단 말인가? '

그 때 안희가 밥상을 공자 앞에 내려 놓았다. 공자는 안희를 어떻게 가르칠까 생각하다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안희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 지내라고 하더구나"공자는 제사 음식은 깨끗하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희도 알기 때문에 그가 먼저 밥을 먹은 것을 뉘우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희의 대답이 오히려 공자를 부끄럽게 했다.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연 순간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그 부분을 이미 먹었습니다."
공자는 잠시 안희를 의심한 것을 후회했다. 성인도 잠시 실수를 할 수 있고 가달에 잡힐 수 있다. 그러나 곧 뉘우쳐 바로 설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것이다.
자기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살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자기를 돌아보아 겸손히 하고 타인에게 관대해야 한다.

한울, 땅, 사람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이 내 삶의 기쁨이요 신앙인의 당당한 모습이다. 단군칙어에서도 [너희는 한울의 은혜와 땅의 이익을 두루 받았으니 풍족하고 넉넉히 살라]라고 하시었다. 우리는 한울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땅의 이익을 두루 누리며 사람과의 삶 속에 서로 넉넉함을 나누어 천지인의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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