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세계 > 단군의 사상과 철학> 3대사상 (三大思想)
 
  01. 종교 통일론 05. 문화론 09. 개물교화 13. 단군의 3대사상
  02. 한민족의 통일 06. 신토불이 10. 단군의 효 14. 용서의 삶
  03. 의식개혁론 07. 교육론 11. 단군의 시대가 오고 있다    
  04. 풍류도 08. 귀일론 12. 단군과 현묘지도    
 
단군의 3대 사상 (三大 思想)
   
  (1) 한얼님을 공경하는 가르치심이다.

      한얼님이란 세상을 생천조물(生天造物)하신 대덕 대혜 대력 생천 주무수세계 조신신물 소소영영 하신다 했다.
즉 한얼님은 가장 윗자리에 계시는데 높으시기로는 일만 나라의 위가 되시며 어버이로서는 억조 창생의 시조가 되시며 도로서는 온갖 교리의 먼저가 되신다고 하시었다. 또한 가장 큰 덕을 가지시고 가장 큰 지혜를 가지시고 가장 큰 힘을 가지시고 한울, 즉 우주를 만드시고 가르치시며 온 누리를 주관하시며 밝고도 신령하여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심을 표현하시었다.

한얼님의 말씀은 들을 수 없지만 말씀 없이 말씀하신다(無言言) 그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모습 없이 모습 하신다(無形形) 그 일은 함이 없으시지만 함이 없이 하신다(無爲) 그러므로 단군 한배검께서는 공경으로 받들라고 팔리훈을 통하여 말씀 하시었다.

사람이 한얼님을 높이 받들면 한얼님도 또한 사람에게 정기를 내려주시어 마치 어린 아이에게 젓을 먹이며 얼은 몸에 옷을 입히는 것과 같고 만약 정성이 없이 높이면 귀머거리와 소경과 같아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보려해도 보이지 않느니라고 하시었다. 또한 한얼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한울도 사람에게 응하지 않아 마치 풀과 나무가 비와 이슬과 서리와 눈을 받지 못함과 같으니라.

나철 홍암대종사도 교인의 오대종지(五大宗旨)를 발표하시면서 경봉천신(敬奉天A-공경으로 한얼님을 받들것)을 제1조로 강조하시었다. 진종대도의 신앙은 유일신의 신앙이다. 범신론적인 무속 신앙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배달민족을 넘어선 전 인류를 창조하신 분을 모시고 받드는 세계 신앙이요, 모든 종교를 여시고 낳으신 종교 근원의 주관자를 섬기는 위대한 신앙이다.

  단군 한배검께서는 이 거룩한 진리를 백두산에 내리시고 교화하시어 온 배달 백성들이 깨닫고 따르니 군자지국(君子之國)이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 되었다. 그리하여 경천민족의 유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에게 남아진 것이다. 홍암 대종사께서는 예수교의 여호아, 마호멭의 알라, 공자님의 상제, 선가(仙家)의 천선숭조 등이 실상은 한 한배 빛이라 말씀하시었다. 그러므로 대종교인은 외래 종교나 이방인을 별달리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백두산으로부터 이산된 전 인류가 한 부모 되신 단군님을 중심으로 하여 그 품안에서 오색 인류가 만날 때 세계 평화는 물론 전세계 통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나라를 초월하고 종족과 종교를 초월하여 진심으로 한얼님을 공경하면 인류는 한가족이요, 한 형제임을 누구도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이 한얼님을 공경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행위가 신앙 의식이요, 이 의식이 오늘의 현대 종교를 이루었다. 한얼님을 받는 신앙 의식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라는 틀 속에 자유의 순수함을 억제하고 무서운 투쟁과 모순으로 둔갑되고 있음을 본다. 종교가 신앙(信仰)을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로 돌변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심정이다.

한얼님은 우리를 본연에 세우셨다.
한얼님의 도, 종문으로 들어와 순백(純白)한 한얼님의 정기를 받자. 만물이 비, 이슬, 서리를 맞아 생장하듯이 우리는 한얼님의 보배로운 빛을 받아 바르게 한얼님을 공경하자. 이것이 단군님을 따르는 근본이요 제일 으뜸 된 원리이며 한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된 구실이다. 한민족에게 있어 경천 신앙은 이 민족의 숭고한 맥이요 천민 천손의 자랑이요, 기쁨이었다.

오늘의 서구 사상과 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고대로 있었던 우리의 사상이었다. 서구 사상이나 종교가 가르쳤던 한얼님 보다 훨씬 먼저 깊고 오묘한 한얼에 대해 가르쳤고 그 가르침을 받아 오늘에까지 경천 신앙으로 면면히 이어 오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천신교(天A敎) 경천교(敬天敎) 숭천교(崇天敎) 진종교(眞倧敎) 등으로 이어져 오늘의 대종교가 되었다. 이 신앙이야말로 민족의 자랑이요 배달 백성의 축복이요 오늘 이 민족의 가장 큰 행복인 것이다.

어느 날 교우 한 분이 단군 한배검을 아직 받들지 않은 형제에게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복은 단군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라고 서슴치 않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한얼님을 바로 알고 모시는 생활을 함이 가장 위대한 행복이요, 기쁨이요, 영원한 쾌락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이 바로 인간의 완성이요 성통공완인이다. 우리가 항상 독경하는 각사(覺辭)에서 처럼 듣고 보시고 낳아 살리시며 오늘 이 시간에 내리시는 영검의 빛을 체휼 해야 한다.

홍암 대종사께서는 "공경의 생활은 산 생활이다. 사람이 죽고 삶이 몸에 있지 않고 신의에 있다"고 하셨다. 한얼님에 대한 신령한 믿음의 의가 사람이 사는 도요 신앙임을 바로 알자 신자는 신앙하는 믿음의 의를 확실히,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바로 그 근원은 한얼공경의 경천(敬天)인 것이다.


(2) 조상(祖上)을 받드는 가르치심이다.

왜 조상을 받들어야 하는 가에 대하여는 누누히 말씀드린 바 있으나 다시 정리하여 본다면
- 한얼님의 뜻이요, 단군님의 가르침이시기 때문이다.
- 인간의 도리요, 또한 천리이기 때문이다.
-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에 어떻게 생활화(生活化)하여 받아들일 것인가?

(가) 제삿날을 기억하여 정성껏 받들자.

  요즈음 젊은이 치고 자기 조상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삿날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되며 기억한다 해도 그 날을 기리어 제사 지내는 젊은 자손들이 몇이나 될까 ? 조상이 돌아가시면 우리와 관계없이 단지 흙 속에 묻히는 것으로 끝인 줄 아는 이 들이 많다. 이것은 아주 큰 착각이며 무덤 같은 편견이다. 조상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이며 지금 우리와 같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조상은 제상(祭床)에 직접 하강(下降)하신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나 또는 해원제(解怨祭)때 신령한 이 들은 그 조상을 전혀 모름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하강하는 것을 보아 그 모습과 죽음의 경위를 안다. 서울 고척동의 한 교우가 이사를 하여 집수리를 하던 중 땅을 파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보니 바로 삽 밑에서 관(棺)이 나왔다.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다시 묻자니 그렇고 갖다 버리자니 걱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뼈를 모아 양지 바른 곳을 찾아 묻고 간단한 메를 짓고 제물을 준비해서 좋은 곳으로 가라고 천도(薦度) 해 주었다. 바로 그 날밤 한 군인이 꿈속에 나타나 자기를 편안한 곳으로 보내 주어 참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수 없이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실재 이런 일은 허다하다.

  조상이 한이 맺혀 돌아가시면 후손들에게 반드시 액운(厄運)이 임한다.
조상이 공적을 많이 쌓고 성통 하여 돌아가시면 후손이 큰 인물이 되어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 등 각 분야에 나타나게 된다. 오늘날 현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을 신령한 이들이 간단한 방법으로 완치하는 것은 그 한을 알고 풀어 주는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실례(實例)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사업이 너무 안 풀려 신령한 이와 함께 조상(祖上) 천도제(薦度祭)를 올리게 되었다. 그 사람은 돌아가신 조상을 부인하는 고지식한 분이며 영적인 것을 싫어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해서라도 앞길을 열 수만 있다면 하고 천도제(薦度祭)를 올리게 된 것이다. 제물을 차려 놓고 함께 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분이 두 손을 모으고 있으라고 했다. 교우는 마음으로는 거부하면서도 체면상 손을 모으고 꿇어앉았다. 인도하는 분이 잠시 조상을 모시는 독경을 외우는 것 같았다.

조금 있더니 기도하던 그 사람이 자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제 3자의 몸짓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서히 손이 부어 오는 것 같더니 뜨거운 기운이 들어오면서 이성(理性)은 분명한데 자기 몸을 자의(自意)로 움직이지 못하고 타의(他意)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30분 정도가 지난 다음부터는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욱 욱 하더니 무겁고도 우렁한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도 후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 되는 분이 임했는데 그분은 살아 생전에 천도교의 선도사로 일하신 분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후 어찌된 셈인지 후손들이 산소에 찾아가 본적도 없고 지금은 충주 땜이 되어 그 산소가 물 속에 잠겼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교우 역시 산소가 물에 잠긴 것을 안 것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댐 공사로 하여 산소가 이장되기도 전에 물에 잠겼다는 것이다. 그 한이 자손인 그 교우에게 임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도하는 동안 국가 문제에서부터 가정의 사소한 일까지 말씀 해 주시는 것이었다. 교우 스스로도 자기 입으로 말은 했지만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고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사실적인 체험은 우리의 조상들이 지금도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그 후 그 사람은 효(孝)와 조상 공경을 잘 하시는 분이 되었고 지금도 그 근원을 중심으로 삶을 사신다. 오늘날 우리는 조상 공경의 유업(遺業)을 잊고 있다. 외래 신앙으로 말미암아 조상을 미신이니 사탄이니 하는 배은망덕한 말까지 서슴치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예수의 가르침을 모르는 어리석은 기독교인이다.

예수님은 신약성서의 첫머리에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자손이라 하시고 자기 조상의 족보를 모두 성경에 넣었다.
마태의 기록을 통해서 예수가 자기 조상을 소중히 여기심을 알 수 있다. 가르침마다 그 조상의 신앙의 예를 들어 가르치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구절도 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조상이 된다. 그 조상을 공경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공경하시었다. 본을 보이셨다. 오늘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은 단군을 조상이 아니라 한다. 자기 조상도 모르면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기독교인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 모양 울어댄다. 단군이 보여준 가르침과 신앙, 그리고 그의 역사적 유적이 면면히 이어 왔는데도 부인하려 든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칼바르트라는 신학자는 조상은 하느님의 대표자라고 했고 동행자라 했다.
조상의 조상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자기 가까이 하느님을 모르고 어찌 멀리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려 하는가 ? 가까이 계신 한얼님, 그러므로 단군 한배검께서는 조상을 잘 받들 것을 가르치셨다.

제삿날을 기억하고 온 자손들이 남녀노소 참석하자 장남만이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가까이 계신 분만 모시는 제사가 결코 아니다. 후손은 모두 동참하여 가신 분의 영혼을 추모하여 그 분의 유업을 받들고 정성껏 제사 하자. 특별한 일로 굳이 참석이 어려울 때는 제물값이라도 보내 드려서 제사하고 조상을 받드는 정신을 되살리자.

(나) 산소를 잘 모시고 자주 참배하자

산소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면회 장소이다. 대화의 장소이다.
산소를 잘 쓰고 가문이 일어나는가 하면 산소를 잘못 쓰고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방학 때 치악산에 사시는 한 도인(道人)과 함께 치악산 등산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너무 많이 걸어 발이 몹시 아프고 피곤했다. 내려오는 길에 산소의 잔디 위에서 쉬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도인께서 옆의 산소를 가르치며 '저 산소는 대(代)가 끊기겠구만' 하시면서 혀를 차시었다. 어린 나는 예민할 때라 그 말을 예사로 듣지 않고 캐물었다. '대가 끊기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산소와 자손이 뭐 그리 큰 관계가 있겠습니까 ?" 했더니 대충 설명을 해주셨지만 어린 마음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심쩍어 궁금하던 중 마침 나무를 하고 내려오시는 그 마을의 주민을 만나게 되었다.

흥미도 있고 해서 ' 저 옆에 있는 산소의 후손을 아십니까' 했더니 알고 말고요 참 안되었습니다. 작년 겨울 연탄 개스로 일가족이 몰살을 했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불과 20분도 안되어 말씀대로 확인을 한 것이다. 어린 내게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묘 자리를 보고 그 후손의 직업 자손의 경제력 또한 가족의 질병의 상태까지도 알 수 있는 분이 서울 장안에 계신다. 한 두 분이 아니다. 이렇듯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왜 외면하고 무시하는가 이 무지(無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나는 일본이 부흥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알 수 있었다. 첨단 과학을 걸어가는 그들이 서구인들이 미신(迷信)시하는 가장 후진적인 신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선진국을 창조한 일본의 정신이었다.

그들의 조상을 공경하는 정신은 그 민족을 위대한 경제 부국(富國)으로 이끈 제1원인이었다. 나로서는 분명하게 확신하는 바이다. 집집마다 모셔진 조상 신단, 집집마다 정성 드려 가꾸는 조상들의 묘,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보통 가정의 모든 이가 조상의 묘를 참배한다. 부모 자식, 형제 모두 될 수 있는 한 동참하는 모습 ! 바로 그것이 일본을 위대하게 만든 밑거름이 된 것이다. 반드시 꽃 한 송이 또는 지극히 적은 음식이라도 정성껏 준비해 참석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한없이 울었다.

  우리 조상이 가르쳐 준 이 생명의 교훈(敎訓)을 이들은 실쳔 하여 2차 대전 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나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 왜 우리 한민족은 조상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중독 사상(中毒 思想), 양독 사상(羊毒 思想) 일독 사상(日毒 思想)으로 썩어만 가고 있단 말인가? 가장 잘 받들고 모시어야 할 우리의 사상은 샤머니즘이라 하여 천박하게 내동댕이쳐 버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민속 의식마저 져버린 우리 정신적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 백성을 생각하고 일본의 어느 신사에서 마냥 울던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어서 눈을 떠야 한다. 조상님이 가르쳐 준 대로만 한다면 우리는 안창호 선생의 말씀대로 위대한 민족이 되고도 남는다. 작은 것부터 발이 닿을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 나가자

한 달에 한번이라도 내 조상의 산소를 돌아보는 정성을 드려 보자.
단군님의 가르침인 조상숭배의 도리를 실천해 보자 조상의 산소 앞에 무릎을 꿇으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바쁘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핑계일랑 다 접어 두고 우리 다시 지난날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그 은덕을 높이자 단군 한배검의 도를 높이 세우자.

(다) 어른에게 공손히 예의를 표하자.

  인사 잘해서 뺨 맞는 법 없다고 했다. 우리가 한배검께 경배하듯 우리 주위의 어른을 공경으로 받들자. 같은 인사라도 손을 모두고 읍하여 인사하는 것은 참으로 겸손하고 공경스러워 보인다. 읍하여 사양하고 순종하는 표현은 우리 조상의 예(禮)요, 우리 후손의 복 받음이 되어야 한다. 위의 모든 행위가 한배검의 뜻을 이루는 조상숭배의 생활 신앙이다.


(3) 인류를 사랑하는 가르침이시다.

  한님께서 생천 하시고 조물 하신 것 중 가장 전지하고 한얼님의 생아(生我)한 것이 바로 우리 모습이다.
인간은 한얼님 보시기에 가장 존귀하며 아름다운 모습이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에 가장 큰 모습으로 인간 개개인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이 주시는 사랑의 실현을 횡적으로 인간이 행해야 하는 것이 삶의 도리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행위야말로 인간이 행해야 할 가장 값진 고행이며 선이다. 인간의 미움과 아픔은 가장 가혹한 악의 표현이며 악행이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사랑 받고 사는 사회, 그 사회의 실현이 홍익세계를 이루려는 단군님의 뜻이다. 한얼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훌륭한 성인을 이 땅에 보내시었다.


석가모니는 자비라는 말씀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시었다.
살생을 금하시어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온갖 생명을 존귀히 여기는 심정을 심으셨다.

예수님을 통하여 한얼이 주신 말씀은 서로 사랑하라는 진리이다.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이라고 가르치시었다.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을 벗어 주고 오리 길을 가자면 십리를 가 주고 왼 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더 맞아 주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거룩한 진리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스스로 그 본을 보이셨다. 자기를 찌르는 로마 병정에게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간절한 사랑의 절규야말로 성인이 남긴 위대한 교훈이다.

공자님의 가르침은 인(仁-어질 인)이다.

  단군께서는 인에 대하여 비유하시기를
' 어짊이란 사랑의 저울추와 같은지라 사랑은 아무 것이나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혹 치우친 사랑과 사사로운 사랑이 있으니 어짊이 아니면 능히 그 중심을 잡지 못할지라. 그러므로 어짊은 봄기운이 따스함과 같아 만물이 되어 나느니라 '고 하시었다. 무엇이나 사랑하는 것이다. 치우침이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어짐이란 따스한 봄기운과 같아 모든 삶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이다.

석가나 공자나 예수는 단군님보다 2,000여 년 후에 오신 분들이다.
단군님은 그 전에 '홍익(弘益 - 넓게 유익하기)'을 펴시었다. 상대를 기쁘게 편안하게 하고 내가 기뻐하는 사상이다. 내가 기쁘기 위해서는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사상이다. 남편(아내)을 기쁘게 편안하게 해 주고 아내(남편)가 행복 해 하는 부부, 자식(부모)을 기쁘고 편안하게 해주고 부모(자식)가 기쁘고 만족 해 하는 가정,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백성을 기쁘고 편안히 해주고 임금을 위해 순종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백성이 있는 나라

서로 대립과 투쟁이 아닌 조화와 상생으로 화합하는 생활 사상, 바로 이 사상이 단군님께서 교화하시고 치화 하시던 홍익의 이상(理想)이었다. 이 이상의 뜻이 단군님의 애인(愛人)의 가르침으로 집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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